BeWylder


그린과 벨 pt.2

마을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오두막. 오두막 안에서 벨은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무언가가 잘 안되는지 그는 때때로 인상을 쓰다가 몇 글자 적고, 잠깐 커피를 마시다 다시 글을 쓰고 이내는 인상을 쓰기를 반복했다. 그는 갑자기 짜증이 나는지 글을 적던 노트에서 종이 한장을 찢더니 두손으로 종이를 구깆구깆 하고는 등 뒤로 던져 버렸다.

- 탁, 탁, 투르르...
- 풉. 벨 아저씨, 종이를 던져서 다행이에요. 이건 맞아도 안 아프네요. 쿡쿡

벨이 등 뒤를 돌아보니 그린이 서 있었다. 그는 소리도 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벨은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인상을 썼지만 그린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는 인상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체념을 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린을 맞았다.

- 응, 너 어떻게 여기 들어왔니, 소리도 없이. 정말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하하.
- 벨 아저씨, 지금 머해요?
- 아, 지금 일을 할게 있었어. 글을 좀 써야하는데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좀 쉬었다 하자!

벨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 소파로 가 앉았다.

- 그린, 이리와서 여기 앉아.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어?
- 네, 별일 없었어요. 그냥 학교 다니고 친구들하고 놀고 그렇죠 뭐. 근데, 벨 아저씨. 멜린다 말이에요.
- 응, 멜린다, 뭐?
- 아뇨. 저 이제는 멜린다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들어요. 신기해요.
- 허허, 너 변덕쟁이구나. 며칠 전에는 멜린다 없으면 곧 죽을 것 같더만.
- 전에는 진짜였어요! 근데, 요즘 멜린다랑 몇번 얘기하다 보니까 걔는 나한테 정말 무관심하더라구요. 전에는 몰랐는데 걔가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걸 아니까 저도 왠지 걔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지던걸요.
- 그린, 그건 있잖아. 왜 그런지 아니?
- 왜 그런데요?
- 그건 니가 아직은 철딱서니이기 때문이야.
- 참 그러시겠군요.
- 하하핫, 요놈 보게.

벨은 그린의 머리에 손을 대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린은 비명을 지르며 그만하라고 악을 써댔다.

- 근데, 벨 아저씨. 저번에 저한테 어떤 말씀을 하셨잖아요. 아마, 제가 항상 제 자신으로 있으라는 그 말. 계속 기억에 남는데 전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아직은 잘 이해가 안되요.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이에요?
- 하하하. 이놈 많이 컸구나. 그말을 기억하고. 그래,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궁금하니? 아마 이해하기 어려울텐데?
- 네, 궁금해요. 설명 좀 해주세요.
- 그린, 그건 쉽게 설명하면 쉽지만, 어렵게 설명하면 한없이 어려운 말이란다. 사실은 나도 잘 몰라.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 근데, 그런 말을 저한테 말씀하신거에요? 그러면 제가 그말을 어떻게 알겠어요?
- 하하, 그만 좀 나를 못살게 굴거라. 그린, 넌 아직 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니, 그지?
- 아니요, 알아요. 장난기가 많고 심심한 건 죽도록 싫어하고. 전 재밌는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 꼭 너다운 말이다. 물론 그런 말들도 너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게 너의 모든 걸 설명하지는 않지. 사람은 있잖니, 재미있는 존재란다. 때로는 가족관계가 요구하는 역할, 때로는 학교생활이 요구하는 역할, 또는 연인관계, 회사생활, 친구들이 너를 보는 관점... 수많은 관계에서 사람들은 너에게 어떻게 행동하도록 요구하고 너는 그에 영향을 받아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대개 적절하게 행동하도록 하려하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지. 일반적인 경우에는 남들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기도 하고, 또는 상대방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부러 그런 척 행동하기도 하지.
- 저는 안 그래요. 저는 언제나 제가 하고싶은데로 행동하거든요.
- 그런 녀석이 멜린다가 좋아한다고 랩을 하냐?
- 앗, 그건... 음... 그때 그순간은 사실은 제가 아니었어요! 잠시 외계인이 제 몸을 빼앗아서 정신나간 짓을 한거라고요!
- 아니, 요놈 보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뻔뻔하게 굴더니만. 여하튼,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뭐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점차 사람들이 바라는 행동을 하는게 더 편해지는 때가 오기는 하지.
- 윽, 난 나이먹고 싶지 않아.
- 그렇게 얼굴빛이 노래도 상관없어. 니가 싫다고 나이 안먹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말이다. 이런 사회적 관계에 도취되다보면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게 진짜 뭐였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단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어떤 아이가 있어. 그는 사실 똑똑한 아이지. 근데, 친구들이 농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기도 열심히 농구를 했지만, 그가 아무리 연습해도 그는 농구를 잘못해. 왜냐하면, 그 길은 그에게 맞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이제는 농구를 그만두고 게임을 좋아하게 됐단다.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 열풍이 불었거든. 이 또한 열심히 노력했지만, 역시 잘은 못했어. 그것 또한 그의 길이 아니었던거야.
- 그 아이는 어떻게 됐어요?
- 나중에 커서 큰 회사에 들어가더니 잘 살더라. 남들 회사 그만둘때 아직도 남아있는 걸 보면 그는 아무래도 회사원 체질이었던 모양이야.
- 에이, 그게 뭐에요?
- 실은 그게 그의 천직이었던거다. 그는 노는 것보다는 친구들, 혹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거지. 그리고 그러한 면 안에 그가 가야할 길이 있었던 거고. 그린아, 너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많은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을거야. 물론 부모님 등 가족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 때로는 너의 친구, 너의 연인이 너에게 큰 영향을 끼칠수도 있고. 근데, 그 가운데 때로는 어떠한 길이 니 길이 맞다고 추호의 의심도 두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갈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은 그 길이 정말 니가 가야할 길인지 아니면 남들의 영향 때문에 선택한건데 니가 그것을 분간하지 못한 것인지는 오직 너밖에 모르지.
- 제가요?
- 그래, 넌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어. 때로는 니가 하고싶어 하는 선택일수도 있고, 때로는 타인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며 고른 선택일수도 있지. 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 어느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어떤게 정말 지혜로운 선택이지?
- 아아, 너무 어려워요.
- 그래, 물론 어렵지. 너무 어려워서 아마 머리에서 증기가 솟아오를거다. 왜냐하면, 그건 나도 모르기 때문이지. 세상에 정해진 해답은 없어. 그래서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거다. 난 어느 순간 그것을 알았단다. 때로는 남들을 위한 선택이 보람찰 때가 있어. 하지만, 때로는 나를 위한 선택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고는 하지.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느 기준에 맞춰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걸까?
- 저... 벨 아저씨...
- 하하, 미안하다. 너무 내 얘기만 하는구나. 근데, 한가지 얘기를 해주마. 로라라는 부인이 있었어.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살았지. 능력있는 남편이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셋이 그의 곁에 있었거든. 근데, 그녀는 돌안간 집을 떠나 사라졌단다.
- 왜요?
- 그녀는 떠나기 전에 편지 하나를 남겼지.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어. '저는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모든게 혼란스러워요. 저는 제가 무엇 때문에 세상을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갑자기 당신을 떠나서 저를 원망할 거라는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 로라'
- 더 이해가 안되네요.
- 그렇지, 이해가 물론 안될거다. 그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녀의 변덕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막내아들은 그 이후로 평생 우울증을 앓다가 최근에 자살했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탓할 수 있겠니?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녀가 준비되지 않은 채 결혼한 거? 물론 사람들은 그녀가 가정의 어머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번민과 혼란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니?
- 세상에.. 말도 안돼.
- 물론 말도 안되지. 근데, 그린. 이거 하나는 알아두거라. 설원을 걷는 여우나, 초원에 우뚝선 코요테는 누가 그러라고 시킨게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드넓은 벌판을 뛰어다닌단다. 니 마음속에 맥박치는 영혼은 언제나 니가 자유로운 생명체가 되기를 요구하지. 물론 그러한 요구 중에는 너를 짐승으로 만들지도 모를 충동도 내재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린? 너는 인간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체이고 지혜로운 존재란다. 태양이 저물 때 하늘 위의 구름이 붉게 저무는 모습을 보고 아름다운 황혼이라고 느끼는게 누구지? 시시각각 변하는 대지의 풍경에 취해 그것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묶어두는 것을 오히려 더 답답해 하고 괴로워 하는 존재는 누구냔 말이야? 참나무와 오크나무 사이를 한걸음에 내달을 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너를 반기는 소리임을 느끼고, 작은 오솔길 사이에 난 시냇가에서 쉬고 있을 때 다람쥐가 니 어깨와 무릎 위를 지나갈 때면 너는 미소를 짓곤 하지. 무엇이 너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고 무엇이 너로 하여금 그렇게 미소를 짓게 할까? 무엇이 너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무엇이 너로 하여금 하늘을 보며 함성을 지르게 하지? 난 너에게 어떤 해답을 주지는 못한단다. 난 그만큼 현명하지도 못하니까. 다만, 지금 내가 너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느 때에라도 넌 니 마음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니가 정말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아서 그 길을 가야 한다는거야. 난 단지 이것밖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구나.
- 아저씨...
- 너 니가 니 자신으로 있으라는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지?
- 네... 아저씨가 말씀해주시니까 뭔가 알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 푸훗,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갖고 와. 그게 네 숙제다.
- 알았어요! 쳇.

by 비와일더 | 2013/03/26 00:46 | Phiksion or Nonfixion | 트랙백 | 덧글(0)
링컨(2012)


이 영화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것이었다.

"I am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clothed in immense power!"

대통령은 그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휘두를 수 있다. 하지만, 힘을 휘두른 만큼 그 댓가를 지불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링컨은 설령 대통령이 되었을지라도 헌법을 수정한 댓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게 권력이라는 것일 것이다.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고 믿는 광신도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지위에 있지 않았을 경우 그가 사람들을 아무리 선동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가 꿈꾸는 비전을 실현하도록 권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원하는 지위에 올라섰을 경우,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댓가로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꿈꾸는 비전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대에는 항시 존재하며, 광신도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에 저항하여 그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발버둥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섰을 때 단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다. 선택이 중요할수록 그에 대한 찬반의 의견은 시끄러워지고 논란은 커지므로 오히려 어떠한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역사가 흘러가야 하는 방향에서 다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미래의 후손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 비전을 실현한 후에 그 결과로써 심판을 받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만인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그 비전을 반드시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그가 걷는 길이 잘못되었다면 그의 선택에 대해 미래의 사람들은 비난을 하거나 혹은 그가 꿈을 이루기 전에 실패할 것이고, 그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면 그는 결국 그의 꿈을 이루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의 선택에 대해 찬사를 보낼 것이다.

어쨌든 그가 제대로 가고 있다면, 모두가 반대해도 하늘은 그의 곁에 있지 않겠는가.
by 비와일더 | 2013/03/24 23:37 | 눈동자에 비친 세계 | 트랙백 | 덧글(0)
그린과 벨

- 이씨, 이건 말도 안돼!

쾅! 하는 소리에 방문이 열리고는 어떤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노트를 바닥에 내팽게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집 자체가 공중으로 3cm 정도 붕 뜰 정도였다. 가족들은 지진이 일어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집안이 시끌시끌 난리가 났다.
그린은 방안에서 씩씩 대며 주저앉았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방 안에는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맘놓고 허공에 대고 주먹을 내지를 수 있었으니까.

- 주먹을 휘두르는 건 자유지만, 좀 멋있게 휘두르면 좋았을텐데...

누가 방문을 열고 방안을 엿보고 있었나보다. 그린은 갑자기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채고나자 갑자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벨 아저씨!
- 후훗, 뭐가 그렇게 열받는 일이 일어났냐? 그나저나 얼굴을 먼저 닦아라. 우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니 보는 내가 다 민망하다.
- 아저씨가 예고도 없이 제 방에 쳐들어왔잖아요!
- 하하핫, 미안미안. 그런데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렇게 화가 나서 씩씩대고 있었던 거야?

그린은 말할까말까 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벨 아저씨니까. 아저씨는 언제나 내 맘을 이해해 줬으니까.

- 아저씨, 저 사실 너무 치욕스러운 일을 겪었어요. 근데, 이걸 아저씨한테 말해도 될지 잘 모르겠네요.

벨은 그린이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린의 방문을 닫고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서 그린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 그래, 그린. 너 좀 안좋은 표정을 보니까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 벨 아저씨. 있잖아요. 저는 아무래도 뭘 해도 안되나봐요.
- 왜?
- 저 실은 오늘 공연을 했었는데, 저 때문에 무대를 완전히 망쳤어요. 저 때문에 제 친구들이 비웃음을 당했다구요.

그린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는 사실 그동안 남몰래 랩을 연습했다. 랩을 잘해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다행히 그의 주위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열심히 랩을 연습할 수 있었고, 힙합 곡도 보란듯이 만들 수 있었다. 그린에게는 문학적인 소양도 있었나보다. 그의 독특한 표현법과 시적 은유, 그리고 그만의 말투가 친구들이 보기에는 놀랍고도 개성적인 모습이었던거다. 그는 친구들의 격려와 칭찬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했고, 친구들과 팀을 이뤄 학교 행사 때 조그맣게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린은 남들 앞에 나선 적이 별로 없던 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나름 철저하게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대 위에 서서 친구들과 같이 공연하게 되니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속으로 비웃었던 친구들은 나름 긴장하면서도 실수하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파트를 공연했지만, 막상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옛날 버릇이 도졌다. 마이크를 쥐고 숨을 들이쉬며 앞을 바라보니 앞에는 관객도 없었고, 무대도 없었으며, 스피커, 마이크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환하게 비치는 조명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는 가사를 모두 까먹었다.

공연은 그대로 중단되었고, 그는 벙어리가 되었다. 다음에 몇곡을 더 준비했지만, 그들은 팀이었고, 그린이 빠지면 그들은 아무 공연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공연을 시작할 때는 사람들이 조금은 옹기종기 모였었지만, 그린이 마이크를 쥐고 난 뒤에는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친구들은 그린이 걱정되어서 위로하는 마음에 괜찮다는 말을 입에 붙였지만 그린은 그게 진심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준비한 공연은 그린 때문에 중도에 갑자기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하하하하하, 그린! 니가 랩을 한다구?
- 아저씨, 너무 비웃으시는 거 아니에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렇게 제 맘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돼요?
- 캬하하하하, 그린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 이씨...

그린은 너무 화가 났다. 이제는 믿었던 벨 아저씨도 자신을 비웃는다. 이 세상에 자기 편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벨은 한참 웃다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어서는 대뜸 그린에게 말을 걸었다.

- 그린, 미안해. 뭐 그럴수도 있지. 근데, 너 갑자기 뜬금없이 랩은 왜 하려고 했던거야?
- 네? 아... 저... 그냥요.
- 너 원래 남들앞에 서는 거 별로 안좋아했잖아. 평소에는 책만 보던 녀석이. 너 무슨 이유가 있었던거지?
- 저... 제 친구들도 다 랩을 하잖아요. 곡 만드는 친구들도 많고. 턴테이블 돌릴 줄 아는 친구들도 여럿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그렇게 된 건데 왜 아저씨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세요?
- 얌마. 내가 널 아는데 무슨 소리야? 너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분명한데. 흐음...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
- 네.
- 근데, 사실을 말하자면 너 음악 안해도 별 상관 없잖아. 넌 그냥 남들 앞에서 개망신 당한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냐?
- (뜨끔) 네?
- 내가 음악하는 애들을 아는데, 너는 음악하는 애들하고는 조금은 달라. 음악은 니 길이 아닌 것도 알고.
- 음악이 제 길이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세요?
- 흐흐흐, 너 자꾸 너 자신을 속이는구나?
- 아니에요!

...

- 아저씨.
- 왜?
- 저 실은 제가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 훗, 그래? 그런데?
- 걔 이름은 멜린다예요. 근데 걔는 랩을 잘 하는 애를 좋아해요. 스페이시가 랩할 때 걔가 스페이시를 바라보는 모습을 봤거든요.

...

- 그린.
- 네?
- 너 멜린다를 포기하는게 아마 좋을거다.
- 왜요?
- 멜린다라는 애가 랩을 잘하는 애를 좋아한다는 걸 들었을 때 그 아이는 너와는 이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 왜 안돼요? 저도 노력하면 될 수 있어요. 세상에 안되는게 어딨어요?
- 그린,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 뭔데요?
- 사람은 각자 성격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 성격은 취향을 만들고, 취향은 자신의 환경을 이루게 되며, 각자의 환경은 스스로의 운명을 정하게 된단다. 너는 이미 너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성격으로 인해 너의 취향과 함께 운명이 어느정도는 정해지는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 너무 어려워요.
- 하하, 그래. 간단히 설명해주마. 너는 장난기가 많고 글을 읽는 걸 좋아하잖아. 남들 앞에 나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에 대해서는 실은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관심이 없는 사항이고. 남들의 이목을 받기보다는 자유롭게 노닥거리고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 아니었냐?
- 맞아요.
- 그린. 그런 너의 모습이나 성격이 바로 너의 운명을 정하는 것이란다. 굳이 니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너의 성격에 맞지도 않는 것들을 애써 할 필요는 없어. 너는 고집이 쌔서 니가 갖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든 가지려고 하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 따로 있지. 나는 그걸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단다. 물론 너도 너의 운명이 있겠지. 난 그걸 완벽히 꿰뚫지는 못하고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야. 사람들 누구나 그렇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다가 때로는 지치거나 질리거나 혹은 힘들어서 잠시 쉬던가 혹은 다른 마을로 잠깐 산책을 떠날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가야 할 길로 되돌아 와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후회하게 될테니까. 지금은 몰라도 어느 순간 자꾸 이게 아닌데...라며 혼란스러워 하고 망설이든가 뭔가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계속 들면서 니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게 될게다. 그린, 난 지금 여기서 랩을 그만두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그건 언젠가 니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문제니까. 하지만, 니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헛되이 노력해서 니가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되는 대상을 향해 손을 내저을 때에는 너에게는 오직 절망과 고통만이 자리할 뿐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구나. 왜냐하면, 니가 그렇게 노력할수록 대상은 신기루처럼 너의 손가락 사이를 스치며 사라지고, 너는 너와 맞지 않는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정작 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체 망각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될 테니까.
- 아저씨..
- 그린? 너는 평범한 아이는 아니란다. 너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너만의 능력이 있지. 그 능력은 너의 성격 안에 있고. 니가 니 자신이기를 항시 유지하되, 니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사는 것임을 잊지 말거라. 너는 영웅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바보 또한 되지는 않으니까.
- 아직도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멜린다가 없이는 전 어떻게 살아요? 전 멜린다를 얻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거란 말이에요.
- 하하, 그린. 넌 지금은 멜린다를 좋아하지만 아마 영원히 그렇지는 않을거야. 너의 멜린다에 대한 사랑은 곧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말라서 사그러질게다.
- 그걸 어떻게 알아요?
-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거야.

by 비와일더 | 2013/03/12 00:30 | Phiksion or Nonfixion | 트랙백 | 덧글(0)
정치(政治)

정치(政治)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다스리는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등을 의미하는데 현실적인 의미로는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력을 행사한다라고 하면 나에게는 정쟁(政爭)을 벌인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특정한 이슈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 정과 반으로 대립하여 서로간에 논쟁을 벌이고 누가 옳고 그르냐를 가리기 위해 서로 싸우며, 이 정쟁에서 승리하여 상대방을 숙청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대개 정치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비판과 비난을 가하여 상대방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킨 후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여 점차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밟는다.

물론, 정치영역에 있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는 상당히 다양하지만 때로는 이슈에 대한 논의결과가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논의를 통해 국가를 개선하기 위해서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서로가 더 확실한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영역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여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을 숙청하고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대의명분을 쥐기 위해서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권력을 실추시키기 위해서 고의로 논쟁을 촉발시킨 후 이 이슈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이나, 문화혁명을 촉발시킨 오함의 해서파관 사건, 러시아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충돌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정쟁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정쟁에 휘말리는 개인들은 논란의 이슈에 대한 중요성이나 시비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견해에 따라 시비에 대한 나름의 견해와 논거를 스스로 정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도로 보면 정쟁에 휘말리는 개인들은 정쟁의 촉발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논쟁의 결과가 시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한 정파의 숙청으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by 비와일더 | 2013/03/06 00:18 | 궤변론의 문헌학 | 트랙백 | 덧글(1)
이사를 했다
그간 집을 이사했다.

이사온 집은 처음에는 무척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좋다.
밤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도시 전경이 다 보인다. 거리가 붉은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아파트 뒤에는 산이 있어 밤에 보면 조금 으시시하다. 하지만, 산 때문에 이상하게 조금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오후가 되면 햇볕이 내 방안을 비추는데 아름답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별 것 아니었다.

일은 무척 편해서 룰루랄라 해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일찍 일이 끝나서 집에 오면 편안하게 인터넷 서핑을 이리저리 하고,
가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시간이 되면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으며 그간 지냈던 일들을 두런두런 얘기하고,
주말이 되면 늦게 일어나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하지 않고,
때가 되면 천천히 씻은 후 밖에 나가 사람들과 놀고,
맘이 편안하고 때가 됐다 싶으면 그간 읽지 못했던 책들을 천천히 읽고...

난 단순히 이런 삶을 원했던 건데 그간 자꾸 내가 한 선택들이
내가 원래 원했던 목표로부터 조금씩 벗어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좋다. 뭔가를 해야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조금씩 줄고
이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이상한 압박감도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사오기 전 그집의 내방은 햇빛이 별로 잘 들지 않아 항상 무언가 조금 어둠침침하고
창밖도 아파트가 양옆으로 죽죽 있어서 전망을 다 가려놓아
창밖을 보면 뻥 뚤린게 아니라 뭔가 가슴이 답답하여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고 마음도 어둑어둑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그런지 책을 봐도 집중도 안되고 자꾸 밖에 나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내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이제 지금 일하는 곳을 옮겨서 좀 편안한 데로 가게만 된다면
조만간 펜을 들어 글을 써도 될 것 같다.
by 비와일더 | 2012/11/25 01:23 | 눈동자에 비친 세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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