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컴플렉스는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처받는 자신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딜레마를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컴플렉스는 꼭 상대방에게 상처받기가 두렵기 때문에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짜증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일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가 고슴도치 컴플렉스의 정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하고, 그래서 점차 그쪽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언젠가
하룻밤의 정사를 나누고 나서 그쪽을 볼때, 나를 너무나도 좋아해주는 그쪽의
눈빛이, 그리고 내게 너무도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는 그쪽의 몸짓이(물론 한켠에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점점더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내 자신을 답답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계속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역겨울 정도로 피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조금 차갑게 상대방을 대하고 조금씩 상대방을 피하려고 하다가, 상대방이
상처를 받고 나에게 더 매달리고 그렇게 옥신각신 다투며 이제는 정말 그쪽이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느껴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할 때 그래서 그렇게 헤어졌을 때
정말로 속이 후련하고 잘됐다고 느끼는게 당연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빈자리가 점차 크게 느껴지고 조금씩 내가 왜 이런 미친짓을 하게 됐는가 의구심이
드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징그럽게 후회하고 어이없게 상대방을
그리워해서 다시금 끊었던 연락을 다시 취하던가 아니면 새로운 이성을 찾아 떠나게
된다.
우스운 일이다. 왜 이런 바보같은 행동이 발생하고 계속 되풀이되는 것일까?
우리에게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감정을 적절히 대처하는 것을 모르는 미숙함 때문에?
확실히 이러한 경험은 책을 통해서는 알기 어렵고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번 경험하고 그 추이를 정확히 기억한다면, 아! 내가 정말 바보같은 짓거리를
해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내가 그동안 여자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던 이유가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소개팅을 했으면서도 왜 오래 지속되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끊은 그 근본적이고 무의식적인 이유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든, 소셜 서클 내에서든 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상대방을 놔주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이유도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건 관계에 있어서의 근본적 회의감. 상대방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
관계에 질식해 억눌리기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
바로 그것이 진짜 이유였다.
그래서 내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그런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이전에
본능적인 수준에서 강한 매력을 발휘하여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끔 나를 빨리
매혹시켜야 하는데, 대개 그런 이성은 너무 높으신 곳에 있어서 나란 사람은 거들떠
보지 않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평범한 이성과 관계를 맺기에 내 회의감은 무척이나 강해서
그런 이성과 관계를 맺을 생각만으로도 내 비위가 상해버린다는 점이다.
(이성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난 사실 매력적이지도 않은 마당에 비위는 너무 약하다.
물론 이건 내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이성관계라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 있고 끊어야 하는 죄악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족보존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극복할 수 없는, '골콘다'라는 이상을 실현하기에
무지한 나같은 우매한 대중에게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하는
일종의 필요악, 혹은 귀찮은 통과의례?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